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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켈리의 나라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에서 만나는 브런치입니다.

This is Brunch to Meet in Monaco, a country of Grace Kelly and the second smallest country in the world.

 

 

 

 

 

[모나코 Monaco]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Monaco)는 앙증맞다.
바티칸시국(Vatican)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프랑스에서 열차로 스쳐 지나온 남부 코트다쥐르의 도시보다도 아담하다.

 

 

 

 

 


작은 모나코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신비롭고 호사스럽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역에 내리면 한 여인의 흔적을 쫓게 된다.
마릴린 먼로와 쌍벽을 이뤘던 할리우드 스타 그레이스 켈리가 그 주인공이다.
모나코 전 국왕인 레니에 3세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그녀의 일화는 수십 년이 흘러도 잔영처럼 남아 있다.

 

 

 

 

 

“내 궁전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어요.”

당시 모나코 왕자였던 레니에 3세는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그레이스 켈리에게 이렇게 청혼했다.

훈훈한 러브스토리와 수만 명이 몰려든 웨딩마치는 프랑스 한 모퉁이의 소국을 화제 속에 몰아넣었다.

결혼식 이후 모나코는 미국 등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관광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절세의 미녀와 관광수입을 한꺼번에 얻어낸 레니에 3세는 정치가이자 로맨티시스트였던 셈이다.

 

 

 

 

 

 

 

여행자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모나코 빌로 향한다.

결혼식이 실제로 열렸던 왕궁과 부부가 잠들어 있는 성당이 있는 공간이다.

수도승으로 위장해 모나코를 탈환했던 프랑수아 그리말디(François Grimaldi)의 동상도 들어서 있다.

정오쯤 열리는 왕궁 앞 위병 교대식은 모나코의 인기 높은 이벤트 중 하나다.

왕궁에는 지금도 왕이 살고 있다.

밖에서 언뜻 봐도 왕이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다.

 

 

 

 

 

 

 

절벽 위에 솟은 모나코 빌은 성채 같은 모습이다.

헤라클레스가 지나간 자리에 신전을 세운 곳이 모나코 빌이라는 전설도 내려온다.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내려다보는 풍경만큼은 압권이다.

모나코 항구를 기점으로 하얀 요트들과 언덕을 가득 채운 부티크 빌라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항구에서 시작된 은빛 물결은 짙푸른 지중해로 이어진다.

성채 위에는 왕이 살고 그 아랫마을에는 귀족(부호)들이 사는 듯한 낭만적인 구조다.

 

 

 

 

 

 

 

진정한 지중해의 휴양국가지만 그래도 바람 잘 날은 별로 없었다.

세기의 결혼식 후에도 스테파니 공주 등 모나코의 왕가들은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되며 화제를 뿌렸다.

현재의 왕(알버트 2세)은 독신이지만 아들과 딸이 있으며, 20년 연하의 남아공 여인과 결혼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그레이스 켈리의 손자인 안드레아 왕자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시켜줄 보랏빛 천국으로도 모나코는 손색이 없다.

 

 

 

 

 

 

 

모나코는 세금도, 군대도 없다.

물, 가스 등 생필품과 국정에 대한 일부도 프랑스에 의존한다.

어찌 보면 태평천국이다.

그런 모나코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는 게 F-1 자동차 경주와 카지노다.

 

 

 

 

 

 

 

매년 5월 열리는 F-1 경기를 위해 항구 일대는 봄부터 단장에 분주하다.

이곳 포뮬러-1 경주는 전용 트랙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펼쳐지는 게 특이하다.

바로 코앞이 항구고 지중해다.

별도의 관중석이 마련돼 있지만 빌라 옥상에서 맥주 한잔 즐기며 경주를 관람할 수 있다.

수려한 경관 속에서 폭음의 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대축제를 만들어낸다.

 

 

 

 

 

 

 

항구 주변은 영화 속에서나 만나던 희귀한 요트들의 세상이다.

세금을 피해 모나코로 이사 온 부호들의 요트가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호화로운 요트만 기웃거려도 흥미롭다.

요트 중에는 웬만한 빌라를 능가하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항구를 끼고 몬테카를로 지역으로 접어들면 모나코의 그랑카지노다.

파리의 가르니에 오페라를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가 1878년 건축한 곳으로 유서도 깊고 외관도 아름답다.

늘 관광객들로 흥청거리지만 막상 자국민들의 입장은 금지돼 있다.

호사스런 모나코로 놀러 온 부자들의 주머니가 주요 관심대상이다.

입구주변에는 고급 차와 명품숍들이 즐비한데 여행자의 투박한 복장으로는 입장이 좀 어렵다.

 

 

 

 

 

 

 

항공편은 없다.

프랑스 니스에서 열차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니스에서 몬테카를로 역까지는 20분 소요.

가는 길 창밖 지중해 풍경이 꽤 인상적이다. 주요 볼거리는 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왕궁, 카지노, 항구 등을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헤라클레스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모나코는 항구도시로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등의 침략을 받았다.

기원전 58~50년 사이 시저(Julius Caesar)가 프랑스 갈리아 지방을 정벌할 때 로마제국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붕괴되고 민족 대이동의 혼란기 동안 모나코는 차례로 동고트족, 비잔틴제국, 랑고바르드족, 프랑크족 등의 침입을 받으면서 황폐화되고 인구 역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11세기 이후 이탈리아 리구리아 지역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인구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10세기 중반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분이었던 모나코는 962년 독일의 오토 1세(Otto I)가 이탈리아 왕국을 접수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자연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191년 헨리 6세(Henry VI)는 모나코를 도시국가인 제노바에게 하사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황제당파와 교황당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제노바에서는 황제당파가 우세해 1271년 교황당파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제노바의 유력 가문이자 교황당파에 소속되어 있던 그리말디(Grimaldi) 가문은 프로방스 지방과 리구리아 지방으로 피신했다.

1276년 제노바에 평화가 찾아오자 가문의 일부분은 제노바로 돌아갔지만 프란체스코 그리말디(Francesco Grimaldi)는 제노바로 돌아가지 않고 1279년 모나코에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다시 제노바에 복속되어 제노바의 봉건국인 제후국으로 인정되었다.

이로서 오늘날의 모나코 군주 가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모나코 공국의 탄생 이후 주변 지역을 사들여 비교적 넓은 영지를 가졌으나 공국의 운명은 제노바의 운명과 같이 했다.

14세기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이 강성해져 제노바가 차지하고 있던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면서 모나코는 다시 아라곤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15세기 아라곤으로부터 모나코를 사들여 공식적으로 모나코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아라곤을 대체한 에스파냐 왕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641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13세로부터 공작을 하사받고 독립적인 프랑스의 제후국이 되었다.

이후 그리말디 가문은 프랑스 파리에서 교육받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귀족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공작 가문을 유지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정부는 1793년 모나코를 몰수하여 합병했다.

이후 나폴레옹이 실각하면서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1815년 비엔나회의에서 모나코 군주로 그리말디 가문을 다시 복귀시켰으나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를 받도록 했다.

1848년 멍똥(Menton), 로크브린(Roquebrune) 등이 모나코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르데냐에 합쳐질 것을 요구하는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도시는 그리말디 가문이 500년 이상 소유하고 있던 영토였다.

사르데냐 왕국은 1860년 이탈리아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모나코가 포함된 니스와 사보이를 프랑스에게 할양했다.

19세기 초부터 재정이 약화된 모나코는 멍똥과 로크브린을 프랑스에 410만 프랑을 받고 프랑스에 넘기는 조건으로 프랑스 보호령 아래에 독립 공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프랑스로부터 받은 410만 프랑은 1863년 개설된 모나코 카지노의 토대가 되었다.

카지노 개설은 큰 성공을 거두어 1869년에는 주민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고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나코 시민들은 세금은 내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농사지을 토지도 공장도 없었고 정부기관과 카지노 일자리는 프랑스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1910년 모나코 시민들은 헌법과 의회를 요구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프랑스가 모나코의 정치와 경제에서 손을 뗄 것도 있었다.

폭동이 거세지자 알베르 1세는 파리로 도망가고 시민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1911년 1월 5일 의회 설립을 포함하는 헌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군주는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 1세는 이 헌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바로 헌법을 폐지시키기도 하였다.

1918년과 1918년 알베르 1세는 프랑스와 안전 및 관세동맹을 체결하였다.

알베르 2세는 1922년 사망하고 루이 2세에 권좌를 물려주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중립국이던 모나코를 침공하여 파시스트 괴뢰정부를 형성했다.

무솔리니의 실각 이후에는 나치 정권의 지배를 받는 괴뢰정부가 박해를 피해서 모나코로 온 90여 명의 프랑스계 유대인들을 인도해 희생당하도록 하기도 했다.

2015년 알베르 공작은 이 일에 대해 사과하였다.

전쟁 이후 1949년 관좌에 오른 레니에 3세는 1956년 미국의 여배우인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62년에는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보다 민주적 체제를 구축했다.

1993년에는 UN에 가입하였고, 2002년에는 프랑스와 그리말디 가문의 대가 끊길 경우에도 모나코 공국의 독립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모나코의 방어는 프랑스가 책임진다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2005년 4월 레니에 3세가 사망한 뒤 아들 알베르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현재에 이른다.

 

 

 

 

[브런치TV 4K] 그레이스 켈리의 나라, 모나코에서 만나는 브런치

– 나는 무관심했다

 

[Brunch TV 4K] Brunch to Meet in Monaco, Grace Kelly's Country
- I was in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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